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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벗논총

솔벗 한국학 총서 <16> 서정주詩의 판타지와 이데올로기

  • ISBN

    978-89-423-4058-3

  • 지은이

    정형근

  • E-mail

    jsp@jisik.co.kr

  • 펴낸이

    (주)지식산업사

  • 전화

    02)734-1978
    www.jisik.co.kr

  • 비고

요약

10년 전 질마재 일대를 답사할 때, 서정주 시인과 방옥숙 여사가 함께 묻혀 있는 질마재에서 줄포로 넘어가는 언덕에서 바라본 줄포만의 아련한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질마재에서 만을 바라보았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탁 트인 바다가 아니라 병풍처럼 둘러싼 거대한 산들이었다. 순간 나는 미당이 어린 시절 혼자 집에 남아 벽을 파먹으며 느꼈을 외로움과 두려움의 근원을 알았다. 지금은 밭으로 개간되었지만, 해일이 외할머니의 집 마당까지 차올랐던 것을 떠올려 보면, 미당 생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까지 바닷물이 차 올랐을 것이다. 집에 홀로 남겨진 어린아이가 밀려오는 파도를 보면서 느꼈을 감정이 나에게까지 밀려온다. 그 아이가 질마재에서 줄포까지 걸어 다니며 보았을 줄포만의 풍경이 아련하게 그려진다.

많은 논자들이 지적했듯, 미당의 문학적 뿌리는 고향인 질마재에 있다. 미당에게 질마재는 시원詩原이자 정신의 근거이다. 미당의 시는 질마재에서 시작하여 세계를 돌아 다시 질마재에서 끝난다.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도 단 한 번도 질마재를 떠난 적이 없다. 몸은 전 세계를 떠돌았지만 정신은 늘 질마재에 머물렀던 셈이다.

이 책은 10년 전 느꼈던 아련함에 대한 내 나름의 해명이다. 책을 쓰고서야 비로소 느낀 점은, 시가 만들어 내는 판타지phantasy가 일종의 서사敍事라는 것이다. 시의 판타지는 마치 꿈속의 이야기와 같다. 이러한 시의 판타지가 꿈과 같은 개인 서사에 머물지 않는 것은 당대의 역사적 이데올로기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시적 상상력이 당대의 역사적 이데올로기와 만날 때, 시는 개인적 예술품이 아니라 사회적 텍스트가 된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에서는 문학 연구의 방법 측면에서 미당의 연구사를 검토하고 연구 대상과 범위를 설정하였다. 더불어 시를 개인적 창작물이 아닌 사회적 판타지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를 밝혔다.

제2장에서는 미당의 초기시인 《화사집》과 《귀촉도》의 일부를 다루었다. 《화사집》에 드러난 대상들은 완전한 육체가 아닌 '폐', '발톱', '코피'등과 같이 파편화한 육체로 나타난다. 더욱이 '코피'는 육체의 파열을 보여 주는 기표signifiant인 동시에 성적 욕망과 결합되면서 야수성을 가진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 거울 단계 이전의 세계에서 육체가 파편화되어 있다고 느끼는 환상은 자아로 하여금 파멸에 이를 수 있다는 인식에 다다르게 하면서, 죽음의 공포와 맞닥뜨리게 한다. 자아는 파멸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대상과의 결합으로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려는 욕망을 보이는데, 그 결과로 생겨난 것이 성적 판타지이다.

이러한 육체의 파편화와 성적 판타지는 당대의 이데올로기와 만나면서 초월적 에고ego의 회피라는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갖게 된다. 이는 〈자화상〉에서 가부장적 아버지의 부재로, 〈화사〉에서는 신의 부재로, 〈문〉에서는 유교적 이데올로기의 거부로 드러난다.

제3장에서는 《귀촉도》에서 《동천》에 이르는 시편들과 후기의 몇몇 시집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이 시기의 시적 주체는, 《화사집》에서 볼 수 있었던 분열과 파편화의 세계에서 오는 긴장과 불쾌감을 해소하기 위해, 세계와 자아 사이의 봉합을 시도한다.

이러한 상상적 통합은 전쟁으로 파괴되어 버린 존재들의 절대적인 죽음을 회피하게 하며, 모든 존재는 불멸하는 생명을 지닌 것으로 상상하게 한다. 아울러 이 시기 지배계급은, 당시의 분리와 단절을 치유할 봉합 이데올로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 당시 서정주는, 당대 지식인과 더불어, 옛 신라를 통해 공적인 분리를 통합할 수 있는 원리인 '신라 담론'을 구축하는 동시에 문학적 텍스트들을 생산한다.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볼 때, 이러한 일련의 행위는 '부권상실의 회피'라는 의미를 갖는다.

제4장에서는 《질마재 신화》를 중심으로 하면서 그 뒤의 몇몇 시편들을 다루었다. 여기에서 시적 주체는 애초부터 어떠한 분리도 존재하지 않는 원초적 상태를 상상한다. 이러한 1차적 나르시시즘의 세계에서 자아와 타자는 원초적으로 통합되어 있기에 어떠한 갈등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계에서 '남과 여', '성과 속', '생과 사'등은 어떠한 차이도 갖지 않고 통합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질마재 신화》가 보여 주는 원초적 통합의 세계는 시대 상황과 맞물리면서, 부권 강화로 경제 발전을 꾀하고 자신들의 정치권력을 공고히 하려 헀던 당대의 지배 체제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갖는다. '질마재 신화'의 시계가 1970년대 경제개발로 파괴되어 버린 전통과 농촌공동체의 회복, 그에 대한 가치 부여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당시 지식인들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널리 퍼진 판소리나 탈춤 등 전통 예술에 대한 현대적 해석으로, 전통 예술에서 지배 체제의 공고화에 맞서는 저항 담론을 찾았다는 사실과, 일종의 상동관계에 있다.


목차

제1장 시적 판타지와 이데올로기

1. 언어의 투명성에 대한 믿음

2. 결정론과 언어학 중심주의를 넘어

3. 사회적 판타지로서의 시

4. 연구 방법과 대상

제2장 분열된 세계와 이데올로기의 거부

1. 파편화한 육체와 거울 단계 이전으로 도주

1) 비천한 것들과 부분 대상의 욕망

2) 주체의 분열과 타자의 거부

2. 파멸의 두려움과 성적 욕망

1) 성적 충동과 희열의 탐닉

2) 생명 본능과 죽음 충동

3. 성적 판타지와 초월적 에고의 회피

제3장 분열의 상상적 통합과 이데올로기의 수용

1. 파열된 육체의 봉합과 거울 단계로 회귀

1) 육체적 치유와 정신적 치유 과정의 동일화

2) 분단의 상상적 치유와 '신라 담론'

2. 불멸의 상상계와 대상과의 합일

1) 절대적 죽음의 회피와 연기

2) 부분과 전체의 상상적 연합과 타자와의 합일

3. 동양적인 것의 구축과 봉합 이데올로기

1) 동양적인 것의 구축과 '대동아공영 담론'

2) '한국적 미'의 발견과 '신라 담론'

4. 2차적 니르시시즘과 부권 상실의 회피

제4장 완전한 자기통합과 메타 이데올로기

1. 통합된 육체와 전前오이디푸스 단계로 귀환

1) 육체의 전경화와 가부장적 질서의 해체

2) 비천한 것들의 카니발과 신분 질서의 전도

2. 신화적 세계와 유년으로 회귀

1) 근접 감각과 시각중심주의의 와해

2) 구술성의 전경화와 문자의 소거 과정

3. 1차적 나르시시즘과 부권 강화의 전도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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