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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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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선정
조선시대에 양잠업은 농업과 함께 매우 중요한 산업으로 인식되었다. 전통사회에서 직물은 의복의 원료인 동시에 화폐 대용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국가에서는 재정의 근간이 되는 쌀과 직물의 안정적 수취를 위하여 농업뿐만 아니라 의료작물(衣料作物) 재배에도 상당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남녀의 일을 ‘남경여직’(男耕女織; 남자는 농사짓고 밭 갈며 여자는 길쌈을 함)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이는 백성들이 농업경영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울 경우 그 모자라는 부분을 여성 부업의 지속적 경영을 통해 보충하라는 의미에서였다. 따라서 양잠업은 조선시대 여성이 종사할 수 있는 항산(恒産)의 주요한 분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왕과 왕비가 백성들에게 몸소 농사짓고 누에치는 모범을 보이기 위하여 친경례, 친잠례를 거행하였다. 친잠례는 왕비가 주관하는 국가의 공식 의례로서, 직접 백성들에게 누에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양잠을 장려하려는 목적에서 거행되었다. 한편 조선전기에는 양잠업을 널리 보급시키기 위해서 각 지역에 잠실을 설치, 운영하였다. 잠실은 각 지방의 주요 도읍과 대궐․한양 일대에[京中]에 설치되었다. 태종대부터 설치되기 시작한 국영잠실은 세종대에 이르면 평안도와 강원도, 함경도 지역에까지 확대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잠실이라는 지명과 양잠과 관련된 대다수의 지명들은 이러한 역사적 유래를 반영하고 있다.
조선전기에 양잠업은 국가의 양잠정책 시행과 16세기 사회경제적인 변화추세에 부응하여 농가경제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 대표적인 부업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16세기에 향촌에서 장시가 늘어남에 따라 양잠업은 더욱 활성화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