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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벗논총

솔벗 한국학 총서 <19> 백제불교사 연구

  • ISBN

    978-89-423-1182-8

  • 지은이

    조경철

  • E-mail

    jsp@jisik.co.kr

  • 펴낸이

    (주)지식산업사

  • 전화

    02)734-1978
    www.jisik.co.kr

  • 비고

요약

백제의 불교는 법화, 율, 열반, 미륵, 아미타가 중심을 이루었다. 그 가운데 법화신앙이 주류를 이루었고, 법화신앙이 다른 불교신앙에도 융섭되어 백제 나름의 불교적 특색을 드러냈다. 그러나 백제불교가 불교와 짝을 이루어 들어온 유교와 끝까지 조화를 이루지 못한 점은 백제 사상사의 한계로 지적할 수 있다.

백제의 불교는 한성시기에 수용되었다. 근초고왕대 고이계와 비류계를 통합하기 위하여 왕실의 계보를 뛰어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요했고, 그 일환으로 왕실에서 불교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왕실의 파트너로 백제의 대표적인 귀족 가운데 하나인 해씨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해씨는 불교 업무를 관장하는 內法佐平을 맡기도 하였다.

한성시기 불교수용 연대에 있어서는 종래 《일본서기》 624년 관륵 기사의 상표문을 한, 중, 일의 불교 수용의 입장에서 해석하였다. 그러나 관륵의 상표문은 불교 수용보다 율의 수용이 중요한 문제임을 지적한 글로서 시급히 일본에 율을 받아들여 승관제를 정비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올린 글이었다.

백제 불교의 초전지와 관련된 전남 영광은 마라난타와 직접 연결시킬 수는 없지만 백제의 불교수용에 대해서 중앙이 아닌 지방의 불교에 대한 논의와 남방불교전래설에 대한 가능성은 열어 두어야 할 것이다.

웅진시기의 불교는 대통사 창건과 겸익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웅진의 대통사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의 법흥왕이 웅진에 대통 원년(527) 양나라 무제를 위해서 지은 절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법화경》에 의하면 전륜성王의 아들로 대통이 있었는데, 그가 출가하여 대통불이 되었다고 한다. 웅진의 대통사는 전륜성왕을 자처한 성왕이 새로 태어난 아들 창[위덕왕]을 위하여 세운 절이었을 뿐만 아니라, 부왕인 무령왕의 명복을 비는 성왕계의 성족관념을 뒷받침한 왕실 원찰이었다.

겸익의 율 정비에 대해서는 당시 백제에서 활약한 중국의 예학자 육후와 대비시켜 살펴보았다. 성왕대 통치체제의 정비는 《시경》과 《열반경》을 융섭하여 유교와 불교가 조화를 이루었으나, 성왕대 후반에 이르게 되면 불교계와 유교계의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그 갈등은 백제 성왕이 552년 일본에 불교를 전하면서 보낸 글에 나타나 있다.

사비시기 불교에 대해서는 사택지적비와 익산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사택지적비는 현재 남아 있는 백제의 유일한 비석으로 종래 도교적 입장에서 해석되었다. 그러나 사택지적은 《법화경》의 전륜성왕-대통불-지적의 계보에 따른 법화신앙자였다. 사택지적은 무왕대에 주로 활약했지만, 의자왕대 초반 정변에 휘말리다가 652년 정계를 떠나게 되었다. 이는 사비시기를 지탱해온 사씨의 실권이며, 줄곧 우세를 유지하던 불교계의 타격으로 볼 수 있다.

무왕과 익산의 관계에 대해서는 신도神都경영의 측면에서 검토하였다. 무왕은 왕실의 안정과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익산을 신도로 경영하였다. 한때 마한의 중심지기도 했던 익산은 고조선의 신시, 마한의 소도 전통을 이은 도시로서 무왕대에는 불신佛神의 도시인 신도로 경영되었다.

신도 익산의 미륵사는 도솔천의 이상세계, 제석사는 도리천의 수미산의 이상세계, 왕궁은 인왕人王의 세계가 펼쳐진 불교적 우주관을 반영한 불국토였다. 이를 기반으로 백제의 무왕은 왕권을 강화시키고 통치체제를 안정시킴으로써 천도를 단행할 수 있었다.

백제 멸망기 백제 유민의 아미타신앙은 계유명아미타삼존불비상에 나타나 있다. 불비상의 조성연대는 674년으로, 사찰의 조성 연대는 673년으로 분리하여 보았다. 불비상에 의하면 백제 유민은 크게 신라 관등을 소지한 무리, 백제 관등을 소지한 무리, 승려 무리로 나눌 수 있다. 이들은 모두 현실적으로 통일된 신라의 국왕대신을 빌었을 것이나, 내면적으로는 멸망한 백제의 국왕대신 및 자신과 7세 부모들의 명복도 빌었을 것이다. 결국, 백제 유민은 현실적으로는 여러 처지에 있었으나, 정신적으로는 아미타신앙으로 하나가 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목차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머리말

제1장 한성시기 불교

제1절. 불교수용의 배경과 의의

1)근초고왕계의 확립과 불교수용의 배경

2)불교수용의 의의

제2절. 불교수용의 연대와 경로

1)불교수용의 연대와 관륵觀勒 상표문의 재해석

2)영광불법초전설靈光佛法初傳說의 재검토

제3절. 불교의 홍포와 해씨

1)아신왕의 교서 반포와 해씨세력

2)내법좌평과 불교

3)개로왕과 북조불교

제2장 웅진시기 불교

제1절. 대통사와 성왕계의 성족관념

1)대통사와 양무제

2)전륜성왕과 대통불

제2절. 법화*열반과 율

1)법화신앙

2)《열반경》의 이해

3)율의 정비

제3절. 유불이념과 제도의 정비

1)제도의 정비

2)유불의 조화와 한계

제3장 사비시기 불교

제1절. 사택지적과 법화신앙

1)사택지적과 대좌평 지적

2)각의보살覺意菩薩과 지적보살

3)대통불과 지적

제2절. 신도神都 익산과 불국토신앙

1)신도 익산

2)동성왕의 익산경영

3)무왕의 신도 익산경영

제3절. 백제 멸망과 아미타 신앙

1)계유명아미타삼존불비상의 조성 연도

2)백제 유민의 아미타 신앙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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